[인터뷰] ‘반도체 설계 전설’ 짐 켈러 “AI, 모든 소프트웨어 대체 확신” - 조선비즈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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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짐 켈러 텐스토렌트 CEO 인터뷰
김우영 기자
입력 2024.06.10. 14:14업데이트 2024.06.10. 14:15
“내게 18개월만 준다면 자율주행 전용 반도체를 만들어 보겠다.”
2016년 초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에 총력을 쏟고 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한 엔지니어가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머스크는 이내 “좋다. 대신 실패할 경우도 대비해 달라”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이 엔지니어는 정확히 18개월 뒤 머스크에게 자율주행 칩 ‘HW(하드웨어)3′를 안겼다.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의 기틀을 다진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당시 이를 실현한 인물이 ‘반도체 설계의 전설’로 불리는 짐 켈러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뿐만 아니라 지금의 AMD를 있게 만든 ‘애슬론’과 ‘라이젠’ 시리즈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애플에선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A4′와 ‘A5′를 만들었다.
최근 줌(Zoom)으로 짐 켈러를 만났다. 그는 현재 캐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텐스토렌트의 CEO를 맡고 있다. 이곳에서 AI 반도체 설계를 진두지휘 중이다. 올해 텐스토렌트가 공개한 AI 반도체 ‘그레이스컬(Grayskull)’은 INT8(8비트 정수)에서 1초당 최대 315조 회의 연산(TOPS)이 가능한 성능을 자랑한다. 반면 전력 소모는 200W로 업계의 다른 AI 반도체보다 전력 효율성이 뛰어나다. “높은 전력 효율성과 오픈 소스가 텐스토렌트의 경쟁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그는 AI가 가져다줄 미래에 관해서도 낙관했다. 스스로 AI 긍정론자에 가깝다는 그는 “분명 AI는 파괴적인 기술이지만, 인간은 이전에도 파괴적인 기술을 잘 다뤄왔다”며 “AI가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더 많이 창출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그는 AI 시대 반도체 업계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다음은 일문일답.
짐 켈러 텐스토렌트 최고경영자(CEO)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전기공학, 전 AMD 수석 설계자, 전 브로드컴 수석 아키텍처, 전 애플 엔지니어링 부사장, 전 AMD 부사장, 전 테슬라 오토파일럿 하드웨어 부사장, 전 인텔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 전 텐스토렌트 CTO /텐스토렌트
◇ “기본이 최고… 코딩보다 예술과 기초과학 가르쳐야”
―AI 반도체 기업의 수장으로서, 당신은 챗GPT 같은 AI와 자주 대화하는가.
“사실 나는 AI와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과거 비디오 게임용 칩을 설계하는 데도 몇 년을 보냈지만, 비디오 게임을 하진 않았다. 대신 책을 읽는다.”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두머(doomer·파멸론자)’와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부머(boomer·개발론자)’ 간 논쟁이 치열하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확실히 두머는 아닌 것 같다(웃음). 부머에 가깝다. AI는 매우 흥미롭고 파괴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전에도 파괴적인 기술을 잘 다뤄오지 않았나. 우리는 이미 사람 간의 지능 차이, 부(富)의 차이, 기업 규모의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AI가 이러한 차이를 더 확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보자.”
―최근 AI가 모든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 확신한다. 시디롬(CD-ROM)이 사라지고 컴퓨터 대신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 것처럼, AI도 빠르게 전통적인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거다. 예전에는 음성인식을 위해 인간이 수천 줄의 코드를 작성했다면, 이젠 AI가 ‘뉴럴 네트워크(인간 신경망을 모방한 컴퓨팅 기술)’를 통해 음성을 인식한다. 앞으로 전통적인 프로그램은 AI가 생성한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인간이 이를 검토할 것이다. 오늘날 자율주행차 기술을 완성하려면 수백만 시간이 걸리지만, 곧 AI를 통해 그 시간도 단축될 수 있다. 내 딸들이 30분 만에 운전을 배운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수백만 마일을 운전할 필요가 없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AI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 엔지니어가 많은데, 조언을 준다면.
“AI는 지금 굉장히 새로운 분야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뛰어들기 좋다. 그러나 큰 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는 종종 오래된 제품의 새 버전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일은 1~2년 정도는 괜찮겠지만, 결국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예술과 기초과학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 고등학교에선 프로그래밍을, 대학에선 캐드(CAD)를 가르치는데, 이건 미친 짓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예술을 하고, 연극을 하고, 악기를 배우고,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역사를 배워야 한다. 기본이 항상 최고다. 나는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이나 컴퓨터 아키텍처를 배운 적이 없다. 대신 물리학과 전기공학을 비롯해 1850년대에 확립된 전자기학 이론을 배웠다. 또 1600년대 만들어진 미적분학·천문학·생물학·철학을 배웠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책과 ‘손자병법’도 읽었다. 사실 나는 난독증이 꽤 있다. 글 쓰는 게 어렵다. 하지만 수학을 정말 좋아했다. 18~19세기에 탄생한 수학 공식 ‘라플라스 변환’과 ‘푸리에 변환’은 내가 배운 최고의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생각하는 법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
텐스토렌트의 AI 반도체 ‘그레이스컬’. /텐스토렌트
◇ “오픈 소스는 항상 승리한다”
켈러가 수장으로 있는 텐스토렌트에 관해 본격적으로 물었다. 그가 텐스토렌트에 합류한 건 2020년 말. 수석 부사장으로 있던 인텔을 떠나 텐스토렌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합류했다. 이후 작년 1월 CEO에 선임됐다. 최근 그레이스컬의 후속작 ‘퀘이사’ 출시를 준비 중인데, 삼성이 미국 텍사스주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에서 제작될 예정이다.
―퀘이사 공개 예정일은.
“올해 말쯤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이 반도체를 일반 제조 기업뿐 아니라 칩 개발자, 데이터 센터,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다양한 고객에게 판매할 계획이다. AI 반도체는 점점 더 많은 제품에 사용될 것이다. 우리의 잠재 고객이 매우 다양하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퀘이사 생산을 맡겼다. TSMC 대신 삼성을 택한 이유는.
“우리는 삼성과 TSMC 두 곳 모두와 일을 해봤다. 앞서 TSMC는 우리의 6㎚(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를 만들었고, 삼성이 다음 세대 4㎚ 반도체 퀘이사를 만들게 됐다. 각 사의 기술 수준, 준비 상태, 특허(IP) 가용성, 가격, 설계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삼성전자(76,500원 ▲ 1,300 1.73%)는 훌륭한 파트너다. 나는 1994년부터 삼성과 함께 일해왔다. 물론 TSMC도 좋은 파트너다. 두 기업 모두 내가 신뢰하는 기업이다.”
―최근 한국 지사도 설립했다.
“한국 고객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지금 한국 지사엔 소수의 인원만 근무 중이지만, 곧 기술 인재도 채용할 계획이다. 한국엔 훌륭한 엔지니어가 많다.”
―텐스토렌트의 반도체는 리스크 파이브(RISC-V)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리스크 파이브가 주요 기업의 아키텍처를 능가할 수 있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현재 AMD와 인텔은 그들의 아키텍처를 독점하면서 다른 기업이 못 쓰도록 막고 있다. ARM의 아키텍처를 사용하려면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반면 리스크 파이브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다. 지금도 약 20~30개의 기업이 리스크 파이브 기술을 사용한다. 결과적으로, 인텔·AMD·엔비디아의 칩뿐 아니라 구글과 메타가 사용할 칩에도 리스크 파이브가 적용될 것이다.”
―오픈 소스의 힘인가.
“그렇다. 오픈 소스는 항상 승리한다. 많은 사람이 함께 작업해야 더 많은 혁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리스크 파이브는 차세대 아키텍처의 표준이 될 것이다.”
리스크 파이브는 2010년 미국 UC 버클리에서 개발한 오픈 소스 ‘명령어 집합 구조(ISA)’다. ISA는 컴퓨터의 CPU(중앙처리장치)가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명령어 세트를 의미한다. ARM 같은 회사의 ISA는 라이선스를 구매해야 하지만, 리스크 파이브는 무료로 제공된다. 그래서 누구나 자유롭게 CPU를 설계하고 사용할 수 있다.
―지금 AI 반도체 시장은 사실상 엔비디아가 독점 중인 것 같은데, 텐스토렌트의 활로는.
“우선 AI 시장만 살펴보자. AI 시장 전체를 엔비디아가 독점하고 있는 건 아니다. AI 시장은 매우 크다. AI의 많은 부분은 클라우드를 통해 인텔과 AMD의 컴퓨터로 실행된다. 애플에선 아이폰과 맥(MAC)으로 AI를 사용한다. 물론 엔비디아가 고가의 고성능 칩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텐스토렌트의 타깃 시장이 아니다. 우리는 제품의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차별점이 있다. 엔비디아와 직접 경쟁하지 않는다. 다른 니즈를 가진 시장을 위해 제품을 만든다. 더 낮은 전력으로 작동하는 프로세서를 만들고, 오픈 소스를 통해 기술을 쉽게 확장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녔다. 누구나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AI 엔진과 CPU 기술도 라이선싱 방식으로 제공한다. 언론은 시가총액이 높은 엔비디아에 주목하지만, 다른 시장에도 기회는 많다.”
―메타와 오픈AI를 비롯해 많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까지 자체 AI 칩을 생산하려고 한다. 전통 반도체 기업들에 악재 아닌가.
“꼭 악재라고 볼 수는 없다. 가령 AMD와 인텔의 사업 영역은 다양하다. 정확한 비율은 모르지만, AMD와 인텔은 사업 비중의 약 30%가 대형 기업 고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체 칩을 만들지 않는 작은 기업과 소비자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아울러 전통 반도체 기업들은 그간 AI뿐 아니라 많은 첨단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새로운 시장이나 틈새시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장의 변화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AI 반도체 시장은 아직 진화 중이다. 새로운 플레이어와 기존 플레이어 모두에게 기회가 있다고 본다.”
―기업공개(IPO) 계획이 있나.
“물론이다. 몇 년 내 IPO에 나설 것이다.”
짐 켈러 텐스토렌트 CEO
◇ “돈·승진 관심 없다… 새로운 도전이 좋을 뿐”
짐 켈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역사에 남을 역작들을 수없이 남겼다. 그러나 한 기업에 머무는 법은 없었다.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으면 다른 기업으로 또 이동한다. 업계에서 그를 ‘해결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가 매번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AMD·애플·인텔·테슬라 등 많은 곳에서 놀라운 제품을 남겼다. 한곳에 머물며 성공을 만끽할 수도 있었는데,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닌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제품을 완성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찾는 게 나의 목표다. 애플에서 여러 제품을 만들었지만,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후 새로운 기회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AMD에서는 젠(Zen) 프로세서와 설계 팀을 성공적으로 만들었고, 테슬라에서는 18개월 만에 자율주행 칩 ‘HW3′를 완성했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HW4′와 자율주행 슈퍼컴퓨터 ‘도조(Dojo)’도 탄생했다.”
―텐스토렌트에서 또 다른 제품을 완성하면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설계된 몇 가지 제품을 가지고 있고, 정말 멋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많은 아이디어가 있다. 내 임무는 텐스토렌트를 매우 성공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매우 재미있다.”
―텐스토렌트를 엔비디아, 인텔, AMD 같은 회사로 키우는 게 당신의 목표인가.
“절대 아니다. 고객은 이미 엔비디아·인텔·AMD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다른 회사를 만들고 싶다. 머스크도 도요타 같은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전기차가 그를 이끄는 곳으로 갔고, 결국 새로운 종류의 차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AI 반도체 시장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호기심과 문제 해결 능력, 열정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특히 AI 칩 성능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보통 우리는 컴퓨터를 구매할 때 성능, 프로그래밍 가능성, 가용성, 비즈니스 조건, 라이선싱, 전력 소비 등을 고려한다. 이 시장에 뛰어든 기업이라면 이 중 하나 이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AI가 고도화할수록 연산 장치와 저장 장치로 이뤄진 전통 컴퓨터 구조 ‘폰 노이만 아키텍처’에도 변화가 생길까.
“컴퓨터 기술의 주요 세 가지 범주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바로 계산, 메모리, 입출력(IO)이다. 그중 계산이 가장 복잡한 부분이다. 현대 컴퓨터에는 CPU, GPU(그래픽처리장치), TPU(텐서처리장치·AI 전용 반도체) 등 세 가지 계산 방식이 있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컴퓨터 계산의 90%가 CPU, 10%가 GPU로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CPU가 10%, GPU가 10%, TPU가 80%를 해낼 것이다.”
―당신은 스티브 잡스부터 일론 머스크까지 테크 업계 거물들과 함께 일해왔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테크 리더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일을 정말로 즐겨야 한다. 젊었을 때 친구의 아내가 우리에게 ‘너희는 물에 뭘 타서 마시냐’고 농담했을 정도로 우리는 하루 종일 일하고, 밤새워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을 좋아했고,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이 싫거나 직장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회사를 그만두고 정말 열정적인 사람과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라.”
―마지막으로, 당신이 매번 혁신적일 수 있었던 비결을 알려달라.
“비결은 없다. 해야 할 일과 해결할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승진과 돈을 위해 일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의 관심사는 오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그리고 매우 개방적이어야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하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해가 안 되면 질문부터 했다. 어떤 사람은 똑똑하게 보이려고 질문을 안 하지만, 그럼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저지르는 실수다. 똑똑해지려고 노력하지 말고 배우려고 노력하라.”
[인터뷰] ‘반도체 설계 전설’ 짐 켈러 “AI, 모든 소프트웨어 대체 확신” - 조선비즈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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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짐 켈러 텐스토렌트 CEO 인터뷰
입력 2024.06.10. 14:14업데이트 2024.06.10. 14:15
“내게 18개월만 준다면 자율주행 전용 반도체를 만들어 보겠다.”
2016년 초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에 총력을 쏟고 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한 엔지니어가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머스크는 이내 “좋다. 대신 실패할 경우도 대비해 달라”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이 엔지니어는 정확히 18개월 뒤 머스크에게 자율주행 칩 ‘HW(하드웨어)3′를 안겼다.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의 기틀을 다진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당시 이를 실현한 인물이 ‘반도체 설계의 전설’로 불리는 짐 켈러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뿐만 아니라 지금의 AMD를 있게 만든 ‘애슬론’과 ‘라이젠’ 시리즈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애플에선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A4′와 ‘A5′를 만들었다.
최근 줌(Zoom)으로 짐 켈러를 만났다. 그는 현재 캐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텐스토렌트의 CEO를 맡고 있다. 이곳에서 AI 반도체 설계를 진두지휘 중이다. 올해 텐스토렌트가 공개한 AI 반도체 ‘그레이스컬(Grayskull)’은 INT8(8비트 정수)에서 1초당 최대 315조 회의 연산(TOPS)이 가능한 성능을 자랑한다. 반면 전력 소모는 200W로 업계의 다른 AI 반도체보다 전력 효율성이 뛰어나다. “높은 전력 효율성과 오픈 소스가 텐스토렌트의 경쟁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그는 AI가 가져다줄 미래에 관해서도 낙관했다. 스스로 AI 긍정론자에 가깝다는 그는 “분명 AI는 파괴적인 기술이지만, 인간은 이전에도 파괴적인 기술을 잘 다뤄왔다”며 “AI가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더 많이 창출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그는 AI 시대 반도체 업계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다음은 일문일답.
짐 켈러 텐스토렌트 최고경영자(CEO)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전기공학, 전 AMD 수석 설계자, 전 브로드컴 수석 아키텍처, 전 애플 엔지니어링 부사장, 전 AMD 부사장, 전 테슬라 오토파일럿 하드웨어 부사장, 전 인텔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 전 텐스토렌트 CTO /텐스토렌트
◇ “기본이 최고… 코딩보다 예술과 기초과학 가르쳐야”
―AI 반도체 기업의 수장으로서, 당신은 챗GPT 같은 AI와 자주 대화하는가.
“사실 나는 AI와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과거 비디오 게임용 칩을 설계하는 데도 몇 년을 보냈지만, 비디오 게임을 하진 않았다. 대신 책을 읽는다.”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두머(doomer·파멸론자)’와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부머(boomer·개발론자)’ 간 논쟁이 치열하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확실히 두머는 아닌 것 같다(웃음). 부머에 가깝다. AI는 매우 흥미롭고 파괴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전에도 파괴적인 기술을 잘 다뤄오지 않았나. 우리는 이미 사람 간의 지능 차이, 부(富)의 차이, 기업 규모의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AI가 이러한 차이를 더 확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보자.”
―최근 AI가 모든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 확신한다. 시디롬(CD-ROM)이 사라지고 컴퓨터 대신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 것처럼, AI도 빠르게 전통적인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거다. 예전에는 음성인식을 위해 인간이 수천 줄의 코드를 작성했다면, 이젠 AI가 ‘뉴럴 네트워크(인간 신경망을 모방한 컴퓨팅 기술)’를 통해 음성을 인식한다. 앞으로 전통적인 프로그램은 AI가 생성한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인간이 이를 검토할 것이다. 오늘날 자율주행차 기술을 완성하려면 수백만 시간이 걸리지만, 곧 AI를 통해 그 시간도 단축될 수 있다. 내 딸들이 30분 만에 운전을 배운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수백만 마일을 운전할 필요가 없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AI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 엔지니어가 많은데, 조언을 준다면.
“AI는 지금 굉장히 새로운 분야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뛰어들기 좋다. 그러나 큰 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는 종종 오래된 제품의 새 버전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일은 1~2년 정도는 괜찮겠지만, 결국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예술과 기초과학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 고등학교에선 프로그래밍을, 대학에선 캐드(CAD)를 가르치는데, 이건 미친 짓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예술을 하고, 연극을 하고, 악기를 배우고,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역사를 배워야 한다. 기본이 항상 최고다. 나는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이나 컴퓨터 아키텍처를 배운 적이 없다. 대신 물리학과 전기공학을 비롯해 1850년대에 확립된 전자기학 이론을 배웠다. 또 1600년대 만들어진 미적분학·천문학·생물학·철학을 배웠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책과 ‘손자병법’도 읽었다. 사실 나는 난독증이 꽤 있다. 글 쓰는 게 어렵다. 하지만 수학을 정말 좋아했다. 18~19세기에 탄생한 수학 공식 ‘라플라스 변환’과 ‘푸리에 변환’은 내가 배운 최고의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생각하는 법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
텐스토렌트의 AI 반도체 ‘그레이스컬’. /텐스토렌트
◇ “오픈 소스는 항상 승리한다”
켈러가 수장으로 있는 텐스토렌트에 관해 본격적으로 물었다. 그가 텐스토렌트에 합류한 건 2020년 말. 수석 부사장으로 있던 인텔을 떠나 텐스토렌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합류했다. 이후 작년 1월 CEO에 선임됐다. 최근 그레이스컬의 후속작 ‘퀘이사’ 출시를 준비 중인데, 삼성이 미국 텍사스주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에서 제작될 예정이다.
―퀘이사 공개 예정일은.
“올해 말쯤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이 반도체를 일반 제조 기업뿐 아니라 칩 개발자, 데이터 센터,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다양한 고객에게 판매할 계획이다. AI 반도체는 점점 더 많은 제품에 사용될 것이다. 우리의 잠재 고객이 매우 다양하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퀘이사 생산을 맡겼다. TSMC 대신 삼성을 택한 이유는.
“우리는 삼성과 TSMC 두 곳 모두와 일을 해봤다. 앞서 TSMC는 우리의 6㎚(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를 만들었고, 삼성이 다음 세대 4㎚ 반도체 퀘이사를 만들게 됐다. 각 사의 기술 수준, 준비 상태, 특허(IP) 가용성, 가격, 설계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삼성전자(76,500원 ▲ 1,300 1.73%)는 훌륭한 파트너다. 나는 1994년부터 삼성과 함께 일해왔다. 물론 TSMC도 좋은 파트너다. 두 기업 모두 내가 신뢰하는 기업이다.”
―최근 한국 지사도 설립했다.
“한국 고객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지금 한국 지사엔 소수의 인원만 근무 중이지만, 곧 기술 인재도 채용할 계획이다. 한국엔 훌륭한 엔지니어가 많다.”
―텐스토렌트의 반도체는 리스크 파이브(RISC-V)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리스크 파이브가 주요 기업의 아키텍처를 능가할 수 있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현재 AMD와 인텔은 그들의 아키텍처를 독점하면서 다른 기업이 못 쓰도록 막고 있다. ARM의 아키텍처를 사용하려면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반면 리스크 파이브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다. 지금도 약 20~30개의 기업이 리스크 파이브 기술을 사용한다. 결과적으로, 인텔·AMD·엔비디아의 칩뿐 아니라 구글과 메타가 사용할 칩에도 리스크 파이브가 적용될 것이다.”
―오픈 소스의 힘인가.
“그렇다. 오픈 소스는 항상 승리한다. 많은 사람이 함께 작업해야 더 많은 혁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리스크 파이브는 차세대 아키텍처의 표준이 될 것이다.”
리스크 파이브는 2010년 미국 UC 버클리에서 개발한 오픈 소스 ‘명령어 집합 구조(ISA)’다. ISA는 컴퓨터의 CPU(중앙처리장치)가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명령어 세트를 의미한다. ARM 같은 회사의 ISA는 라이선스를 구매해야 하지만, 리스크 파이브는 무료로 제공된다. 그래서 누구나 자유롭게 CPU를 설계하고 사용할 수 있다.
―지금 AI 반도체 시장은 사실상 엔비디아가 독점 중인 것 같은데, 텐스토렌트의 활로는.
“우선 AI 시장만 살펴보자. AI 시장 전체를 엔비디아가 독점하고 있는 건 아니다. AI 시장은 매우 크다. AI의 많은 부분은 클라우드를 통해 인텔과 AMD의 컴퓨터로 실행된다. 애플에선 아이폰과 맥(MAC)으로 AI를 사용한다. 물론 엔비디아가 고가의 고성능 칩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텐스토렌트의 타깃 시장이 아니다. 우리는 제품의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차별점이 있다. 엔비디아와 직접 경쟁하지 않는다. 다른 니즈를 가진 시장을 위해 제품을 만든다. 더 낮은 전력으로 작동하는 프로세서를 만들고, 오픈 소스를 통해 기술을 쉽게 확장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녔다. 누구나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AI 엔진과 CPU 기술도 라이선싱 방식으로 제공한다. 언론은 시가총액이 높은 엔비디아에 주목하지만, 다른 시장에도 기회는 많다.”
―메타와 오픈AI를 비롯해 많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까지 자체 AI 칩을 생산하려고 한다. 전통 반도체 기업들에 악재 아닌가.
“꼭 악재라고 볼 수는 없다. 가령 AMD와 인텔의 사업 영역은 다양하다. 정확한 비율은 모르지만, AMD와 인텔은 사업 비중의 약 30%가 대형 기업 고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체 칩을 만들지 않는 작은 기업과 소비자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아울러 전통 반도체 기업들은 그간 AI뿐 아니라 많은 첨단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새로운 시장이나 틈새시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장의 변화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AI 반도체 시장은 아직 진화 중이다. 새로운 플레이어와 기존 플레이어 모두에게 기회가 있다고 본다.”
―기업공개(IPO) 계획이 있나.
“물론이다. 몇 년 내 IPO에 나설 것이다.”
짐 켈러 텐스토렌트 CEO
◇ “돈·승진 관심 없다… 새로운 도전이 좋을 뿐”
짐 켈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역사에 남을 역작들을 수없이 남겼다. 그러나 한 기업에 머무는 법은 없었다.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으면 다른 기업으로 또 이동한다. 업계에서 그를 ‘해결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가 매번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AMD·애플·인텔·테슬라 등 많은 곳에서 놀라운 제품을 남겼다. 한곳에 머물며 성공을 만끽할 수도 있었는데,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닌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제품을 완성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찾는 게 나의 목표다. 애플에서 여러 제품을 만들었지만,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후 새로운 기회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AMD에서는 젠(Zen) 프로세서와 설계 팀을 성공적으로 만들었고, 테슬라에서는 18개월 만에 자율주행 칩 ‘HW3′를 완성했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HW4′와 자율주행 슈퍼컴퓨터 ‘도조(Dojo)’도 탄생했다.”
―텐스토렌트에서 또 다른 제품을 완성하면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설계된 몇 가지 제품을 가지고 있고, 정말 멋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많은 아이디어가 있다. 내 임무는 텐스토렌트를 매우 성공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매우 재미있다.”
―텐스토렌트를 엔비디아, 인텔, AMD 같은 회사로 키우는 게 당신의 목표인가.
“절대 아니다. 고객은 이미 엔비디아·인텔·AMD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다른 회사를 만들고 싶다. 머스크도 도요타 같은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전기차가 그를 이끄는 곳으로 갔고, 결국 새로운 종류의 차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AI 반도체 시장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호기심과 문제 해결 능력, 열정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특히 AI 칩 성능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보통 우리는 컴퓨터를 구매할 때 성능, 프로그래밍 가능성, 가용성, 비즈니스 조건, 라이선싱, 전력 소비 등을 고려한다. 이 시장에 뛰어든 기업이라면 이 중 하나 이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AI가 고도화할수록 연산 장치와 저장 장치로 이뤄진 전통 컴퓨터 구조 ‘폰 노이만 아키텍처’에도 변화가 생길까.
“컴퓨터 기술의 주요 세 가지 범주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바로 계산, 메모리, 입출력(IO)이다. 그중 계산이 가장 복잡한 부분이다. 현대 컴퓨터에는 CPU, GPU(그래픽처리장치), TPU(텐서처리장치·AI 전용 반도체) 등 세 가지 계산 방식이 있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컴퓨터 계산의 90%가 CPU, 10%가 GPU로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CPU가 10%, GPU가 10%, TPU가 80%를 해낼 것이다.”
―당신은 스티브 잡스부터 일론 머스크까지 테크 업계 거물들과 함께 일해왔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테크 리더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일을 정말로 즐겨야 한다. 젊었을 때 친구의 아내가 우리에게 ‘너희는 물에 뭘 타서 마시냐’고 농담했을 정도로 우리는 하루 종일 일하고, 밤새워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을 좋아했고,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이 싫거나 직장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회사를 그만두고 정말 열정적인 사람과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라.”
―마지막으로, 당신이 매번 혁신적일 수 있었던 비결을 알려달라.
“비결은 없다. 해야 할 일과 해결할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승진과 돈을 위해 일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의 관심사는 오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그리고 매우 개방적이어야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하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해가 안 되면 질문부터 했다. 어떤 사람은 똑똑하게 보이려고 질문을 안 하지만, 그럼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저지르는 실수다. 똑똑해지려고 노력하지 말고 배우려고 노력하라.”